2008. 3. 17.

20080203 ["우리집은 래미안입니다."]


임지영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 vol.3 p.117-134 시민극의 형성



" 우리집은 래미안입니다. ”

- 인간의 사회적 욕망과 그러한 욕망이 담긴 장소



1. 계몽시대의 사회적 환경, 현대시대의 사회적 시선


지난번 본문에서 우리는 시민계급이 예술의 새로운 소비자로 등장하는 것을 보았다. 이러한 예술주체의 변화는 시민극이 발달하는 계기가 되었다. 고전비극과는 달리 시민극에서는 사회가 개인의 운명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게 된다. 신에게 의지함으로써 물질적 현실에서 독립된 자율적인 존재일 수 있었던 고전비극의 주인공들은 더 이상 독자들의 공감을 얻어내지 못한다. 물질적 현실의 지배를 받게 된 시민계급은 사회적 환경이라는 조건에 따라 움직이는 주인공에 더욱 공감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개인의 사회의 함수화’는 근대를 거치면서 더욱 심화된다. 데카르트 이후 신으로부터 ‘주체’로 떨어져 나온 인간은 마르크스의 역사유물론을 지나오며 더 이상 사회와는 떨어져 생각될 수 없는 존재가 된다. 신을 벗어남으로써 인간에게 부여된 자유는 더욱 확대된 것처럼 보였지만 실상은 더 큰 이상적 경지를 이루고자 하는 초부르즈와적 감정을 우리 모두에게 심어놓는 결과를 낳았다. 그리고 이렇듯 개개인 모두에세 심겨진 초부르즈와적 감정은 우리로 하여금 타자를 더욱 의식하게 함으로써 우리가 타자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도록 부추기고 있다. 더욱이 도시에 오밀조밀 모여 살게 되면서 그러한 시선은 더욱 강화되고 있다. 시민극에서 대두되었던 사회적환경은 현대에 와서 사회적 시선으로 대체되어 도시 전체를 팬옵티콘(panopticon)으로 만들어 버렸다.


이러한 사회적 환경의 중요성이 부각되기 시작하면서 자연스레 계몽주의 연극의 주인공은 사회적 신분이나 계급과 때놓고 생각될 수 없게 된다. 이는 현대시대에도 마찬가지이다. 다만 당시의 신분을 규정하는 기준과 지금의 기준이 달라졌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그렇다면 현대시대에서의 신분체계는, 확대해서 현대인의 정체성은 무엇으로 반영되는가? 물론 많은 요소들이 있겠지만 우리가 소비하고 점유하는 장소들에 초점을 맞추어 이번 발제를 진행해 보고자 한다. 즉 타자의 시선으로 규정된 일련의 신분적, 계급적 이미지들이 내재되어있는 장소들이 우리의 사고와 행동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그 안에서 얼마나 새로운 삶이 가능한지 모색해 보고자 한다.



2. Enjoy MIGO’s Style!



출처 : 미고 홈페이지


현대사회에서 우리가 이용하는 대부분의 재화와 서비스는 기업이 우리에게 제공해주는 것들이다. 그러므로 기업은 철저히 자신들의 상품의 이미지를 만들게 된다. ‘Enjoy your meal.’ 대신에 ‘Enjoy MIGO’s Style!’을 바라보며 샌드위치를 먹는 나는 샌드위치에 돈을 지불했는지, 미고 로고에 돈을 지불했는지, 깔끔하고 정겨운 인테리어에 돈을 지불했는지, 강남대로의 임대료에 돈을 지불했는지 알 수 없어지게 되는 것이다. 이제는 진부하게 들릴 이야기지만 중요한 것은 어떻게 ‘보이느냐’ 이다. 아마 위의 질문에 가장 가까운 정답은 ‘이미지에 지불했다’ 일 것이다. 결국 우리는 타자의 시선에 규정된 재화를 선택하게 되는데 이는 우리가 사용하는 물건 뿐만이 아니라 우리가 점유하는 장소들에도 적용된다. 즉 기업들에 의해 공간들까지도 상품화되게 된 것이다. 최근 문제화 되고 있는 래미안 광고는 그러한 추세-장소의 본질의 변화- 를 잘 보여준다.


이렇듯 이미지화 된 다양한(?) 장소들은 우리의 정체성으로까지 연결된다. 어디서 쇼핑을 하고, 어디서 밥을 먹고, 어디서 커피를 마시고, 어디서 잠을 자는가 가 자신의 정체성을 형성한다. 대게는 기업이 제공해주는 이미지에 따라 장소의 성격이 규정되고 – 물론 어떤 장소가 있는 지역의 영향도 받겠지만 - 그에 따라 우리는 타자의 시선에 의해 잘 훈련된 행동방식으로 공간을 사용하게 된다. 이는 장소에 잠재된 타자의 시선으로 자기 자신을 규정하는 도시인이라면 피해갈 수 없는 습성이다. 우리는 장소가 우리에게 요구하는 대로 지속적으로 자신의 모습을 변화시키고 적응시킨다. 도시 구조 안에서 ‘나 자신’을 끊임없이 재생산하는 것이다. 광고의 권력과 더불어 진행되는 이러한 재생산은 개개인의 삶을 별 다를 바 없는 것으로 만들어낸다. 따라서 대게는 기업이 우리에게 제공해주는 만큼 만 장소를 사용하게 되는데, 이러한 보이지 않는 권력은 – 그것은 기업의 권력 이라기보다는 서로서로의 감시에서 나오는 권력이라고 보는 것이 더 옳을 것 같다. - 파시스트적인 방식으로 우리의 행동양식을 조절한다.



3 _ 새로운 이야기, 새로운 장소


새로운 행동방식과 새로운 이야기는 새로운 공간 사용을 요구한다. 다음의 예들은 장소를 새로운 방식으로 사용함으로써 사람들의 행동양식이나 사고가 변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 LIFE STYLE HOTEL


출처 : 라이프스타일호텔 홈페이지


파티 스위트 룸이나 테마모텔의 이색적인 방들은 대학생들의 MT나 친구들간의 연말파티와 같은 프로그램을 소화하면서 모텔의 기능을 확장 시켰다. 이제 모텔은 새로운 놀이 공간으로 자리 잡았다. 당당히 서 있는 4개의 빌딩과 왁자지껄한 카운터는 ‘거리낄게 뭐야?’라고 외치며 소비자의 인식을 바꾸어 놓았다.


- 인사동의 찻집 ‘귀천’


출처 : 네이버 블로그


옛 기차역의 대합실과 같은 배치는 나와 대화하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이 서로 등을 맞대고 수다를 떠는 상황을 만든다. 처음 들어가면 머쓱하지만 어느새 적응하여 서로의 주제가 섞이며 자연스레 대화의 주체가 확장되기도 한다.



4. 주체적으로 장소 사용하기


좀 더 다양한 삶이 싹틀 수 있는 장소들을 위해선 두 가지 방향의 접근이 필요하다. 일단 다른 프로그램과 장점을 내세운 장소들이 많아지는 것이다. 거대 기업처럼 이미지 메이킹이 제대로 되지 않아 인지도가 낮은 장소들은 ‘홍대 주변’. ‘신사 가로수길’. ‘인사동길’ 과 같은 지역적 특성에 수요를 의지할 수 밖에 없는데, 이것도 각 지역에 수요가 많이 몰리게 되면 소수가 원하는 장소들은 임대료가 없어 곧 망하게 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따라서 근성있는 소비자의 발악(?)이 뒷받침 되지 않고서는 가치 있는 장소들이 유지되기 어렵다.


그러나 우리가 좀 더 타자의 시선의 틀을 깬 방식으로 장소를 사용할 수 있다면 가능하지 않을까? 서로를 감시하는 권력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면 좀 더 새로운 종류의 공간에서 펼쳐지는 새로운 행동과 사유가 가능하지 않을까? 거대자본으로 비슷하게 매너화 된 행동에서 벗어날 수 있는 탈출구는 우리 개인에게 달려 있겠다는 부담스러운 결론으로 발제를 마친다.

20080127 [오타쿠의 유투브]

이다미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 vol.3 pp.55-113 새로운 독자와 관객




오타쿠お宅, オタク유투브YouTube

-파괴되는 예술창작의 경계. 진화하는 비평집단, 2인칭과 many to many의 예술.




불가에서 중생이 있듯이 폐인 세계에는 햏자가 있다. 햏자들은 열반에

다다름을 득햏이라 하는데, 이 득햏을 하기 위해 항시 수련하고 있다.
득햏 수련에는 3대 기본 수련과정이 있으니, 그것은 주침야활(晝寢夜活),
삼시면식(三時麵食), 햏언수행이다 (햏자복음 제3장).








1. 오타쿠와 디씨폐인


-예술의 개인화된 소비와 사이버공간에 대한 강박적 생활의 문화적 소비

우리는 디씨인싸이드닷컴www.dcinside.com의 ‘햏자’들을 기억한다. 이들은 디지털카메라 리뷰사이트에서 시작되어 발전된 웹사이트의 매우 세분화된 카테고리의 게시판에서 온갖 종류의 시시콜콜한 주제를 두고 갑론을박을 펼치며 서로 반응의 민첩함을 다투며 긴장감을 즐기는 무리들이다. 스스로를 폐인이라 칭하며 많은 시간을 가상공간인 인터넷에 할애한 나머지 이들이 만들어낸 3대원칙은 지극히 게으르게 보내고 있는 현실세계의 단면을 잘 보여준다 이들 ‘햏자’들은 ‘아햏햏’과 ‘님하’와 같은 자신들만의 자극적인 조어를 서로의 기호로서 교류하며 사회적 약속체계로서 언어가 갖는 기본틀을 해체하여 사용하는데, 이들의 언어는 ‘~하오’, ‘압박하다(반응을 나타내다)’, ‘방법하다(혼내주다)’와 같이 자신을 2인칭으로 이해한 표현들을 주로 사용한다. 이러한 인칭관계는 가상공간의 익명사회 속에서의 공동체적 동일성과 친근함이 비껴 표현된 것으로, 개인들은 다수소통many to many communication의 관계 사이에 id와 비칭으로 적절히 자리잡을 수 있다.

이들의 생활은 90년대 일본에서 디지털매니아로 성장하여 대두되기 시작한 ‘오타쿠’문화의 연장선 상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일본의 오타쿠라고 하면 표면적으로는 방에는 만화책과 캐릭터 피겨가 가득하고 엄청난 용량의 컴퓨터 하드에는 좋아하는 애니와 그라비아아이돌의 디지털영상콘텐츠가 가득한 -촌스러운 옷차림과 사회부적응 성향의- 2,30대의 남성이 연상된다. 이들은 비교적 짧은 역사를 가진 대중매체의 하위문화에 집착하며, 그 정보를 수집하고 체계화하며 만족을 얻는다. 테크노와 애니메이션으로 집에 갇혀 자신만의 세계를 건설하던 디지털매니아들은 네트워크를 만났고, 그 네트워크 공간에서 자신만의 세계를 연출하기 시작했다. 사회와는 뭔가 다른 행동, 이전 사람들과는 뭔가 다른 양식과 취향을 통해 그들은 동인집단(동호회)을 만들었고 그들만의 규범적 표상을 통해 사회 내적 존재로서 세계에 자신을 링크시킨 것이다. (‘오타쿠’를 지칭하는 일본어는 원래 상대를 높여 부르는 용어로 한국 폐인들의 ‘님하’와 매우 비슷한 어원을 가지고 있다는 점도 재미있다.)




2. 모에현상과 패러디


-예술의 생산 소비 유통구조의 중첩과 대중화.

초기, 혹은 대부분의 동인활동을 통한 오타쿠 개인들 사이의 교류와 패러디의 시도는 원전의 기본 구조를 변형하지 못하고 외부에서 주어진 완결된 서사의 세계 머물렀다. 이들은 서사를 열어 현실로 확장시키지 못했고 오히려 광적으로 서사의 중심에 몰입하며 현실로부터 도피하였다. 문화소비는 범주와 장르에 한정되었으며 고작 기념판의 출시 정도로 되새김질 되거나 튀어나온 뱃살에 ‘신지’의 스판수트를 끼워 입으며 체화하는 것에 그쳤다.

오타쿠 문화의 양적 성장은 필연적으로 그들이 향유하는 문화의 유통구조에 영향을 준다. 동인지에 의한 패러디는 미디어는 주로 원전을 따르지만 서사구조가 변형된다. 이에 생긴 추상 개념으로 ‘모에(萌え)’가 있다. 이는 좋아하는 미소녀 캐릭터나 전동차와 같은 것에 가슴에 솟는 ‘훈훈함’정도로 이해할 수 있는 개념인데, 주로 남성향이 강한 분야에서 모에현상에 의한 팬서비스 차원의 문화생산구조가 발달했다. 만화연구가 김낙호는 이를 ‘원형적인 요소들의 파편을 긁어 모아서, 그 속에서 자신만의 이상향을 조합해 맞춰내는 방법’이라고 규정하는데 패러디의 목적이 개인적인 까닭으로 이를 통해 직접적인 문화의 예술적 확장을 크게 기대하기는 어렵다. 이정우의 경우 원전에의 충성과 편집증적 수집을 통해 자신만의 이상향을 구축하고 그 안에서 추상적인 자기만족의 쾌락을 획득하는 일이 오늘의 젊은이들이 사회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다는 냉혹한 사실을 역설한다는 것이라 말하기도 한다.



3. 웹진, 블로그, 미디어아트, 하이퍼-내러티브 그리고 유투브


-이데올로기가 아닌 취향을 통한, 메시지가 아닌 미디어를 통한 스타일의 인코딩

일본 오타쿠(표면적이고 상징적으로 단순히 지칭)의 자기만족적 패러디는, 한국의 오타쿠인 디씨폐인들에 와서는 온라인 정치행위와 광장에 대한 지배 등 선동적이고 폭력적인 양상을 보이다가, 블로그의 시대가 본격적으로 도래한 이 후로는 문화예술적 취향을 통해 더욱 다층화된다. 꾸준히 등장하는 예술에서의 미디어아트 분야의 양적 질적 성장과 함께 가상공간의 디지털문화 또한 풍요롭고 복잡하고 예민한 현실의 감성에 비교적 가깝게 다가서게 된 것이다. 링크된 웹진과 블로그들은 사이버스페이스에서의 개인들에게 지정학적 좌표를 제공하여 대중의 접근을 용이하게 만들었다. 사람들은 더욱 쉽게 더 많은 것들과 교류하게 되며, 그럴수록 개인의 취향으로 무장하고자 열망하게 되었다. 선형적인 시간 위의 개인은 가상공간의 hyper-narrative를 통해 자아의 분화된 면모들을 하나의 문화체계로 재편성한다. “주체의 드라마는 객체와 주체의 이미지 난관에 봉착하면서 끝났으며, 우리는 배우나 극작가가 아니라 다층적 네트워크의 단말기에 불과하다”는 보드리야르의 언급은 전자정보시대의 다원화된 정체성multi-identity을 특징으로 하는 새로운 주체탄생을 예고하고 있다. 이러한 열린 서사는 디지털 문화와 예술을 이해하는 핵심이 아닐까, 개개인의 실명은 무의미에 수렴한다.

우리는 여기서 미디어와 예술과의 관계를 논하지 않을 수 없다. 예술(혹은 문화)과 매체 또는 예술과 테크놀로지는 미학과 예술사가 제기하는 본질적인 문제들과 닿는다. 디지털과 시청각예술의 만남은 예술 텍스트의 생산, 소비, 유통의 전과정을 비물질적인 시스템으로 재편하였다. 게다가 그 변화는 날이 갈수록 고도로 복합적인 스타일을 손쉽게 하고 있다. 웹 상의 게시판에서 함께 감상하고 리뷰를 작성하고 댓글을 달던 ‘오타쿠폐인’들은, 이제 동영상 서비스, 게시판에서 1:1채팅, 메신저 서비스와 wi-fi 무선 랩탑, 휴대폰을 기본으로 PDA와 PMP기기 등 다양한 서비스를 누릴 수 있게 되었다. 언제 어디서나 깁슨이 얘기한 바와 같은 ‘수천만이 합의하는 공감각적 환각’속에 들어갈 수 있다. 또한 욕망의 다채로운 표출이 가능해졌으며 의사소통의 선택가능항이 확대되었다. 더구나 이 서비스들 대부분은 일방적인 예술가와 생산자에 의해 소비되는 방식이 아닌, 함께 만들거나(prosumer), 혹은 스스로 만드는(DIY)방식에 의해 이루어진다.


“Everyone’s a star.com”
이제 우리는 값싼 테크놀로지 덕으로 스스로 영화나 앨범, 또는 TV쇼를 만들 수 있다. 아

무리 가치 없다고 판단되는 아이디어라 할지라도, 컴퓨터는 그것을 아주 전문적으로 만들
수 있도록 도와준다. 컴퓨터 덕분에 우리는 우리 스스로 뭔가를 만들 수 있는 가장 간단한
테크놀로지를 가질 수 있게 되었다.
-Romesh Ratner & Joel Stein, Time, June 5, 2000




유투브닷컴YouTube.com을 필두로 한 동영상의 대중화는 옛날 MTV가 현대의 거실에 그러하였듯 인터넷의 시뮬라크라에 새로운 시청각적 활력을 불어넣는다. (비록 저작권을 훼손한 원전들이나 성-폭력을 소재로 한 상업적 영상물들이 함께 유통되고 있기는 하나) 특히 가상공간에서의 집단창작을 통한 예술의 생산과 소비의 공공성 확대는 유투브를 통해 실현의 가능성을 엿볼 수 있다. 유투브는 동영상을 매개로 하는 까닭으로 기본적으로 -대부분 기초적인- 메타언어로 구성된다. 이렇게 생산된 텍스트는 전달하고자 하는 바가 비교적 명확하지 않기 때문에 메시지 중심의 기존의 소통체계에서는 피드백의 가능성 즉, 댓글 혹은 패러디의 가능성이 매우 낮은 소통체계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짧고 단순한 비결정적 구조를 취한 까닭으로 담론의 장에서 무한한 소통의 가능성을 가지기도 한다. 창작하거나 답을 하기 위한, 혹은 패러디를 위한 내용을 개념화 하여 하나의 영리한 스타일로 인코딩하는 것을 택하는 것이다.

아래의 사진들은 유투브에 링크된 동영상들을 캡쳐한 것으로 daftpunk의 곡과 뮤직비디오의 구조를 다른 시각적인 기호와 제스쳐들로 패러디한 것들이다.




이러한 생산성은 하위문화의 결합이나 집단창작의 확대로 발산하는 것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주류예술에도 영향을 끼치고 있다. 대표적으로 1960년대 이후 활발하게 진행중인 미디어 아트와 가상공간 혹은 인터랙티브의 관계는 현 시대 –아트의 대세를 이루고, 현태준(1966년생)의 국산품展은 만화가이자 장남감 수집가이기도 한 그의 오타쿠적 기질이 다분한 작업이다(아래 이미지들). 최신 영화 ‘클로버 필드’의 울렁거리는 핸드헬드홈비디오연출은 (제작비 수천만달러라는 점만 뺀다면) 유투브 그 자체 아닌가.

다만 쌍방향성을 특징으로 하는 새로운 소통구조의 문화가 예술 텍스트로서의 미학적 성과와 질을 담보할 수 있나, 하는 질문에는 아직 단언할 수 없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으로 첫 세미나의 발제문을 얼렁뚱땅 끝맺어본다.

2008. 3. 9.

Salon, Coffee n Conversation

Salon, Coffee n Conversation
A motive power of art history,'The private party'
쌀롱, 커피 그리고 대화 예술사의 원동력, '사적 모임'



이브 끌랭Yves Klein이 막 20살이 되었을 무렵, 그는 오랜 친구인 아르망Arman,클로드Claud와 함께 대화를 하고 있었다. 세 친구는 니스의 해변에 누워 즉흥적으로 세상을 삼등분했는데 아르망이 육지를, 클로드가 대기를 그리고 끌랭은 하늘을 가졌다.
끌랭은 구름 하나 없는 남프랑스의 하늘의 푸른 빛을 보며 이렇게 말한다.
"내 하늘을 멋대로 날아다니며 푸른 빛에 구멍을 내는 새들이 싫다."
그는 이후로도 쭉 이 푸른 빛에 빠져들었고, 요절하기까지 그가 가지게 된 하늘을 캔버스에 나타내기 위해 애를 썼다. 그가 친구들과 나눴던 이 장난스러운 대화는 이후 미술사에 거대한 족적을 남기게 된 'IBK Blue'라는 자신만의 색깔을 만들어 내게 되었다.¹

앞선 이야기는 신사실주의Nouveau Realisme의 기수라고 불리는 프랑스의 화가 끌랭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는 지금 유럽을 대표하는 화가이자, 세계 미술의 역사에 새로운 기운을 불어 넣었다. 물론 그 자신이 가지고 있던 천재성과 열정, 장난스러움이 그를 지금의 위치에 안착하게 했지만, 세 친구가 나누었던 위의 대화가 없었다면 끌랭의 아이덴티티identity라고 할 수 있는 '푸름'에 대한 관심을 가질 수 있었을까. 물론 그것은 단정할 수 없는 문제지만, 적어도 그 관심의 계기는 늦춰졌을 것이다. 세 친구가 니스의 해변에서 나눴던 사소한 대화 그리고 그에 대한 논의는 이렇듯 세계 미술의 흐름을 변화시켰다.



An introduction 주제 설정의 변
본 발제가 텍스트로 삼고 있는 내용은 궁정예술이 쇠퇴하면서 등장하는 새로운 예술의 태동, 즉 시민 예술의 발아 지점을 다루고 있다. 50쪽이 조금 넘는 분량 속에서 필자는 개인적으로 흥미가 이는 소재 몇 가지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귀족과 부르주아 계급The noblesse and bourgeoisie이 서로 반목하면서도 멈출 수 없었던 '문화적 평준화의 과정', 늘 가슴을 두근거리게 하는 '볼떼르Voltaire', 망나니의 문학이라고 하는 '피카레스크 문학Picaresque'등이 그것이었다. 하지만 이상 열거한 소재들은 본격적으로 다가가기에는 내용의 무거움을 피할 수 없을 듯 보였고, 무엇보다 필자의 역량 밖의 문제들이라고 생각되었기 때문에 제외할 수 밖에 없었다. 대신 전부터 관심이 있던 '쌀롱 문화Salon'에 대한 약간의 언급을 찾을 수 있었다. 특히 텍스트의 19~20p는 사적인 모임The private party이 어떻게 궁정문화를 만들었고 다시 그 궁정을 해체했는가에 대해 다루고 있다. 그들이 즐겼던 사적인 파티들 속에서 새로운 예술의 태동은 힘을 얻었고 또 후원되었던 것이다. 개인적으로도 '간지나는' 친구들끼리 떠드는 깊이 있는 수다와 그 속에서 생겨나는 넘쳐나는 아이디어들은 늘 동경의 대상이다. 특히 화려한 쌀롱에서 줄담배를 피우고 커피를 홀짝이며 사뭇 진지하게 토론하는 사라져버린 예술가들의 모습이 그렇다.
이런 연유로 이번 발제에서는 쌀롱문화, 즉 사적인 모임속에서 어떻게 예술이 이루어지고 또 향유되는지, 더불어 그 사적인 모임이 예술사에서 얼마나 큰 힘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해 생각해보고자 한다. 또한 우리가 나아가고자 하는 세미나 역시 '사적인 모임'이라고 본다면 그 의미가 배가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가져본다.



Salon n Café 쌀롱문화와 까페
우리는 자주 잊곤 하지만 예술은 인간을 위한 것이며, 그 역시 인간이 만드는 산물의 일부이다. 그리고 한 인간이 거대한 예술을 만들기 위해서는 혼자 힘으로는 부족하다. 그와 뜻을 같이 하는 또 다른 인간들이 필요하며 그렇게 몇이 모이면 자연스럽게 모임Party이라는 것이 결성된다. 하지만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애초에 그 몇몇의 사람들이 모인 계기가 무척이나 사적Private이라는 점이다. 그들은 그저 자신의 머릿 속에 떠도는 참신한 이미지들을 말하고 싶었고 그것에 동조하고 격려해줄 누군가를 원한 것 뿐이다. 그리고 너무나 당연한 결과로서, 둘 이상의 존재들에게서 받은 동조는 일정한 결과를 낳게 된다. 즉 상념으로만 존재했던 것을 실제 존재하는 무언가로 만들기 시작한 것이다. 이 상호작용은 무척 자연스럽게 그리고 빠르게 인간사회에서 일어난다. 그리고 예술은 만들어진다.
이러한 사적모임들이 이름을 갖게 된 것은 텍스트 2권에서 언급된 것처럼, 16c와 17c의 쌀롱²을 통해서였다. 단순한 궁정모임이었던 쌀롱이 본격적으로 예술사를 창조하기 시작하는데, 그 구성원들이 당시에 힘있고 재능있던 귀족집단이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후에 궁정의 해체와 함께 쌀롱의 장소는 화려한 궁정의 연회장에서 '까페Café'로 변화한다.

사적인 모임의 성격과 까페는 무척이나 잘 어울리는 조합이다. 특히 일정한 패러다임이 형성되고 그 유행에 민감한 예술계에서 사적인 대화A private conversation의 중요성은 무척 중요하다. 공적인 장소에서의 공적인 대화는 여러모로 공격의 대상이 되기 쉬우며 그 자체로 공격적 제안이 되기 쉽다. 그러나 사적인 대화는 그저 자신이 생각하고 있던 독특한 아이디어들을 쉽게 풀어 놓을 수 있으며 때로는 당시의 유행사조와 정반대되는 이야기를 할 수 도 있다. 오히여 새롭고, 기괴하고, 독특한 대화거리가 훨씬 인기있었을 것이다. 즉 공적인 장소가 이미 만들어진 흐름을 공고히 하는 역할을 했다면, 사적인 장소는 그 흐름을 깨는 역할을 한 것이다. 아카데미Academy는 지리멸렬한 전통으로 예술가들을 억눌렀지만, 모든 실험이 가능한 까페의 자유방임은 미술가들의 사고의 폭을 한없이 확장시켜주었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대부분의 유럽의 예술, 문화, 정치 등의 시작은 이러한 까페에서 비롯되었다. 특히 까페가 그 힘을 발휘했던 부분은 미술계였다. 유럽의 미술은 부분적으로 까페에서 형성되었으며 파리의 까페미학은 수많은 미술이론을 태동시켰으니 말이다. 까페에는 국내외의 신문과 잡지가 있어 정보를 쉽게 얻을 수 있었고, 미술가들이 자유롭게 만나 토론할 수 있었으며, 당구대가 있어 그들의 무료함을 달랠 수도 있었다. 어느 까페에 가면 누구를 만날 수 있는지, 또 어느 까페의 단골이 누구인지는 미술가들 특히 신진 미술가들에게 익히 알려져 있었다. 무엇보다 약속없이 미술가들의 만남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질 수 있었다. 그리고 우리는 이곳에서 서로의 얼굴을 드로잉하던 에곤 실레Egon Schiele구스타프 클림트Gustav Klimt를 만날 수 있다.



Coffee, Cigarette n Conversation 커피, 담배 그리고 대화
사실 실레와 클림트는 꽤 큰 연배의 차이가 있었다. 당시 무명이었던 실레는 27살 연상의, 이미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던 클림트와 교분을 쌓게 된다. 독특한 것은 그들이 사제간의 그것이 아닌, 화가 대 화가간의 만남이 가능했다는 것이다. 물론 중년의 풍요로움을 가지고 있던 클림트의 아량도 이러한 관계 설정에 한 몫 했겠지만 그들의 만남은 주로 베를린의 까페에서 이루어졌다는 점은 주목할만하다. 특히 그 사적이고 편안한 분위기는 그들이 동급의 관계를 쌓게 한 계기를 만들어 주었을 것이다. 당시 클림트는 호프먼J. Hoffman과 함꼐 재미있는 계획을 꾸미고 있었는데 이 계획에 모저K. Moser 그리고 실레가 함께 하면서 점차 현실로 이루어진다. 이들의 계획은 당시의 고루한 미술계의 흐름과는 정반대되는 공방, 즉 '아틀리에Atelier 결성'이다.

그들은 답답한 예술에 환멸을 느끼고, 대신 합리주의적인 사상에 심취해있었다. 그 일환으로 보통 완벽한 미술작품을 주로 만들던 공방과는 달리 일상용품을 주로 만드는 '빈 공방Wiener We rkstette'을 만든다. 건축가였던 호프만의 지휘 아해, 그들의 예술관을 담은 건축물을 만들고 그 공간의 벽화, 가구, 실생활품의 디자인은 클림트와 실레가 맡았다. 이 독특한 실험들은 유행을 선도했을 뿐 아니라, 유럽 각국의 공업계에 새로운 제작방식을 도입하게 만든다. 물론 이들의 실험은 후에 이루어진 또 다른 흐름들에 묻혀 사라졌지만 각 분야의 친구들과 행했던 도전은 단순한 도전만으로 끝나지는 않았다.

실레와 클림트의 관계 그리고 그들의 공방은
앤디워홀Andy Warhol의 '팩토리The factory' 여러모로 유사성을 가지고 있다.
팩토리는 위에서 언급했던 사적인 모임 중에 가장 대표적이면서도 영향력있는 예일 것이다. 앤디 워홀은 팩토리라는 공간에 그와 비슷한 생각을 공유한 매력적인 젊은이들을 불러 모은다. 그들은 흡사 창고와 같은 인상을 풍기는 이 공간에서 담배, 커피, 샴페인을 즐기며 예술 각 분야에 대한 사담을 나눈다. 그 공간에서 영화를 찍고, 그림을 그리고,
사진을 찍고, 글을 썼다. 또한 당대의 건축가, 미술가, 춤꾼, 배우, 가수 등 그 분야를 넘나드는 사람들이 모였다. 물론 앤디 워홀은 이 팩토리를 단순한 모임으로만 생각하진 않았지만-이 공간의 결과물들은 대부분 상업적으로 소비되었다-그들의 단순한 수다가 뉴욕을 넘어서 전 미술계에 끼친 영향력은 의미심장하다고 볼 수 있다. 실레Schiele는 바스키아Basquiat로, 클림트Klimt를 워홀Warhol로 치환하고 빈 공방Wiener Werkstette을 팩토리The factory로 생각한다면 시대와 공간을 뛰어넘은 이 '사적 모임Private party'이 얼마나 지속적으로 예술계를 움직였는가를 짐작케한다.

이 외에도 예들은 무궁무진하다. 현재의 영화계에 전설로 남아있는 시네마 테크Cinema- thé que와 평론지 '카이에 뒤 시네마 Cahiers du Cinma'랑글루아Langlois, H.프랑Franju, G.라는 두 명의 청년의 사담에서 시작된 기획이었고, 후에 시네마 테크의 일원이 되었던 고다르Jean-Luc Godard, 트뤼포Franois Truffaut 등이 그들의 이상을 현실로 만든다. 국내의 문학계 역시 그 시작은 숫기 없는 청년들의 '동인지'였고 그들이 '다방'에서 소일거리를 하며 나누었던 대화들이 지금의 공고한 문학을 만들었다. 사적인 모임의 중요성은 예술 전반에서 확인할 수 있으며 예술뿐 아니라 인간의 힘으로 만들어지는 추상적인 개념들의 원연 역시 이 곳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The place of origin of ART 예술의 자연발생지
한 마디로 말하자면, 사적인 모임과 그 모임이 '주로' 이루어지는 까페는 예술의 새로움이 자연발생하는 무대이다. 스탈린Iosif Vissarionovich Stalin이 지성인들을 색출하기 위해 제일 먼저 겨냥했던 곳은 '뿌리없는 세계주의자'들이 득실득실했던 까페였다고 하니, 그 자연발생의 힘을 짐작할 수 있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깊은 밤, 마음 맞는 친구들끼리 놀이터에 모여 나누던 수다의 시간을 가장 좋아한다. 지금은 다들 생활과 연애사에 쫓겨 그 시간이 점점 줄어들고 있지만, 그때의 수다가 지금의 나를 만들어 온 것을 부정할 수 없다. 그때 했던 이야기들은 늘 어딘가 부족하고 엉뚱했지만 대신 신선하고 자극적이었다. 또한 혼자만 간직했던 은밀한 생각을 나누는 행위를 통해 개인적인 가치관과 신념을 더욱 공고히 할 수 있었다. 나의 이 사적인 대화를 실레와 클림트, 워홀과 바스키아와 비교하는 것은 다소 무리가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가치는 온전하다고 생각한다. 더불어 지금하고 있는 세미나를 통해 내게 의미있던 그 수다의 시간들이 다시 발현되길 기대해본다. end




[Annotate 주석]
1. 전원경. 『짧은 영광, 그래서 더 슬픈 영혼』197~198p. Sigongart. 2007
2. 복수형 salons은 사교계를, 대문자로 시작되면 미술전람회나 자동차 전시회 등을 가리키고, 또 다과점이나 미장원을 가리키는 데도 쓰이지만 문학사에서는 특히 17∼18세기 프랑스 상류사회에서 성행되던 귀족과 문인들의 정기적인 사교모임을, 미술에서는 살아 있는 화가나 조각가들의 연례 전람회를 가리킨다. www.naver.com 백과사전 'salon'

2008. 2. 22.

게시물 형식을 꼭 참고해주세요.

1. 제목

20080103 [쌀롱, 커피 그리고 대화]


(즉, 세미나를 한 날짜-발제문주제)

을 기본으로 합시다. 제목형식은 모두 맞추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 발제자도 제목에 넣을지 고민이 좀 되는데요. 주제를 강하게 표현하는게 나을 것 같아서요.

2. 본문

일단 첫 줄에는

이슬기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 vol.3 p.13-57 궁정예술의 해체
(즉, 발제자와 기본이 되는 책과 페이지와 책이 다룬 주요 시대 혹은 주제) 를 쓰도록 합시다.
글을 올릴때는요. 파일을 올리지 말고 원문을 게시판에 넣어서 읽기 편하게 올리도록 합시다.

그러고 나서는 자유로운 형식으로 원문을 실으면 될 것 같고요. 기타 필요한 동영상, 사진 들도 원본을 잘 실어서 세미나 때 가져오는 하얀 종이보다 더 많은 정보를 공유할 수 있도록 해주세요. 그리고 폰트는 왠만하면 일치시키도록 합시다.(포인트 말고 보통 글이요.) 아무것도 건들지 않으면 제가 설정해놓은 글씨체로 나오는데요. 포인트 주실 것만 바꾸어 주시면 됩니다.

3. 순서

포스팅은 발제를 한 순서를 꼭 지켜서 했으면 합니다. 지금 슬기까지 해서 총 5번 했는데 슬기가 올린 다음 다미, 저, 기웅오빠 순으로 지금까지 한 자료를 올리겠으니 슬기양을 얼른 올려주길를 바랍니다. 앞으로 발제와 세미나가 끝난 날 모두 게시물을 업하도록 합시다.

4. 레이블

흔히 태그라고 하죠. 레이블을 귀엽게 달아주세요~

이거 말고 다른 좋은 의견들이 있으시면 답글을 달아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