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다미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 vol.3 pp.55-113 새로운 독자와 관객
오타쿠お宅, オタク의 유투브YouTube
-파괴되는 예술창작의 경계. 진화하는 비평집단, 2인칭과 many to many의 예술.
불가에서 중생이 있듯이 폐인 세계에는 햏자가 있다. 햏자들은 열반에
다다름을 득햏이라 하는데, 이 득햏을 하기 위해 항시 수련하고 있다.
득햏 수련에는 3대 기본 수련과정이 있으니, 그것은 주침야활(晝寢夜活),
삼시면식(三時麵食), 햏언수행이다 (햏자복음 제3장).
1. 오타쿠와 디씨폐인
-예술의 개인화된 소비와 사이버공간에 대한 강박적 생활의 문화적 소비
우리는 디씨인싸이드닷컴www.dcinside.com의 ‘햏자’들을 기억한다. 이들은 디지털카메라 리뷰사이트에서 시작되어 발전된 웹사이트의 매우 세분화된 카테고리의 게시판에서 온갖 종류의 시시콜콜한 주제를 두고 갑론을박을 펼치며 서로 반응의 민첩함을 다투며 긴장감을 즐기는 무리들이다. 스스로를 폐인이라 칭하며 많은 시간을 가상공간인 인터넷에 할애한 나머지 이들이 만들어낸 3대원칙은 지극히 게으르게 보내고 있는 현실세계의 단면을 잘 보여준다 이들 ‘햏자’들은 ‘아햏햏’과 ‘님하’와 같은 자신들만의 자극적인 조어를 서로의 기호로서 교류하며 사회적 약속체계로서 언어가 갖는 기본틀을 해체하여 사용하는데, 이들의 언어는 ‘~하오’, ‘압박하다(반응을 나타내다)’, ‘방법하다(혼내주다)’와 같이 자신을 2인칭으로 이해한 표현들을 주로 사용한다. 이러한 인칭관계는 가상공간의 익명사회 속에서의 공동체적 동일성과 친근함이 비껴 표현된 것으로, 개인들은 다수소통many to many communication의 관계 사이에 id와 비칭으로 적절히 자리잡을 수 있다.
이들의 생활은 90년대 일본에서 디지털매니아로 성장하여 대두되기 시작한 ‘오타쿠’문화의 연장선 상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일본의 오타쿠라고 하면 표면적으로는 방에는 만화책과 캐릭터 피겨가 가득하고 엄청난 용량의 컴퓨터 하드에는 좋아하는 애니와 그라비아아이돌의 디지털영상콘텐츠가 가득한 -촌스러운 옷차림과 사회부적응 성향의- 2,30대의 남성이 연상된다. 이들은 비교적 짧은 역사를 가진 대중매체의 하위문화에 집착하며, 그 정보를 수집하고 체계화하며 만족을 얻는다. 테크노와 애니메이션으로 집에 갇혀 자신만의 세계를 건설하던 디지털매니아들은 네트워크를 만났고, 그 네트워크 공간에서 자신만의 세계를 연출하기 시작했다. 사회와는 뭔가 다른 행동, 이전 사람들과는 뭔가 다른 양식과 취향을 통해 그들은 동인집단(동호회)을 만들었고 그들만의 규범적 표상을 통해 사회 내적 존재로서 세계에 자신을 링크시킨 것이다. (‘오타쿠’를 지칭하는 일본어는 원래 상대를 높여 부르는 용어로 한국 폐인들의 ‘님하’와 매우 비슷한 어원을 가지고 있다는 점도 재미있다.)
2. 모에현상과 패러디
-예술의 생산 소비 유통구조의 중첩과 대중화.
초기, 혹은 대부분의 동인활동을 통한 오타쿠 개인들 사이의 교류와 패러디의 시도는 원전의 기본 구조를 변형하지 못하고 외부에서 주어진 완결된 서사의 세계 머물렀다. 이들은 서사를 열어 현실로 확장시키지 못했고 오히려 광적으로 서사의 중심에 몰입하며 현실로부터 도피하였다. 문화소비는 범주와 장르에 한정되었으며 고작 기념판의 출시 정도로 되새김질 되거나 튀어나온 뱃살에 ‘신지’의 스판수트를 끼워 입으며 체화하는 것에 그쳤다.
오타쿠 문화의 양적 성장은 필연적으로 그들이 향유하는 문화의 유통구조에 영향을 준다. 동인지에 의한 패러디는 미디어는 주로 원전을 따르지만 서사구조가 변형된다. 이에 생긴 추상 개념으로 ‘모에(萌え)’가 있다. 이는 좋아하는 미소녀 캐릭터나 전동차와 같은 것에 가슴에 솟는 ‘훈훈함’정도로 이해할 수 있는 개념인데, 주로 남성향이 강한 분야에서 모에현상에 의한 팬서비스 차원의 문화생산구조가 발달했다. 만화연구가 김낙호는 이를 ‘원형적인 요소들의 파편을 긁어 모아서, 그 속에서 자신만의 이상향을 조합해 맞춰내는 방법’이라고 규정하는데 패러디의 목적이 개인적인 까닭으로 이를 통해 직접적인 문화의 예술적 확장을 크게 기대하기는 어렵다. 이정우의 경우 원전에의 충성과 편집증적 수집을 통해 자신만의 이상향을 구축하고 그 안에서 추상적인 자기만족의 쾌락을 획득하는 일이 오늘의 젊은이들이 사회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다는 냉혹한 사실을 역설한다는 것이라 말하기도 한다.
3. 웹진, 블로그, 미디어아트, 하이퍼-내러티브 그리고 유투브
-이데올로기가 아닌 취향을 통한, 메시지가 아닌 미디어를 통한 스타일의 인코딩
일본 오타쿠(표면적이고 상징적으로 단순히 지칭)의 자기만족적 패러디는, 한국의 오타쿠인 디씨폐인들에 와서는 온라인 정치행위와 광장에 대한 지배 등 선동적이고 폭력적인 양상을 보이다가, 블로그의 시대가 본격적으로 도래한 이 후로는 문화예술적 취향을 통해 더욱 다층화된다. 꾸준히 등장하는 예술에서의 미디어아트 분야의 양적 질적 성장과 함께 가상공간의 디지털문화 또한 풍요롭고 복잡하고 예민한 현실의 감성에 비교적 가깝게 다가서게 된 것이다. 링크된 웹진과 블로그들은 사이버스페이스에서의 개인들에게 지정학적 좌표를 제공하여 대중의 접근을 용이하게 만들었다. 사람들은 더욱 쉽게 더 많은 것들과 교류하게 되며, 그럴수록 개인의 취향으로 무장하고자 열망하게 되었다. 선형적인 시간 위의 개인은 가상공간의 hyper-narrative를 통해 자아의 분화된 면모들을 하나의 문화체계로 재편성한다. “주체의 드라마는 객체와 주체의 이미지 난관에 봉착하면서 끝났으며, 우리는 배우나 극작가가 아니라 다층적 네트워크의 단말기에 불과하다”는 보드리야르의 언급은 전자정보시대의 다원화된 정체성multi-identity을 특징으로 하는 새로운 주체탄생을 예고하고 있다. 이러한 열린 서사는 디지털 문화와 예술을 이해하는 핵심이 아닐까, 개개인의 실명은 무의미에 수렴한다.
우리는 여기서 미디어와 예술과의 관계를 논하지 않을 수 없다. 예술(혹은 문화)과 매체 또는 예술과 테크놀로지는 미학과 예술사가 제기하는 본질적인 문제들과 닿는다. 디지털과 시청각예술의 만남은 예술 텍스트의 생산, 소비, 유통의 전과정을 비물질적인 시스템으로 재편하였다. 게다가 그 변화는 날이 갈수록 고도로 복합적인 스타일을 손쉽게 하고 있다. 웹 상의 게시판에서 함께 감상하고 리뷰를 작성하고 댓글을 달던 ‘오타쿠폐인’들은, 이제 동영상 서비스, 게시판에서 1:1채팅, 메신저 서비스와 wi-fi 무선 랩탑, 휴대폰을 기본으로 PDA와 PMP기기 등 다양한 서비스를 누릴 수 있게 되었다. 언제 어디서나 깁슨이 얘기한 바와 같은 ‘수천만이 합의하는 공감각적 환각’속에 들어갈 수 있다. 또한 욕망의 다채로운 표출이 가능해졌으며 의사소통의 선택가능항이 확대되었다. 더구나 이 서비스들 대부분은 일방적인 예술가와 생산자에 의해 소비되는 방식이 아닌, 함께 만들거나(prosumer), 혹은 스스로 만드는(DIY)방식에 의해 이루어진다.
“Everyone’s a star.com”
이제 우리는 값싼 테크놀로지 덕으로 스스로 영화나 앨범, 또는 TV쇼를 만들 수 있다. 아
무리 가치 없다고 판단되는 아이디어라 할지라도, 컴퓨터는 그것을 아주 전문적으로 만들
수 있도록 도와준다. 컴퓨터 덕분에 우리는 우리 스스로 뭔가를 만들 수 있는 가장 간단한
테크놀로지를 가질 수 있게 되었다.
-Romesh Ratner & Joel Stein, Time, June 5, 2000
유투브닷컴YouTube.com을 필두로 한 동영상의 대중화는 옛날 MTV가 현대의 거실에 그러하였듯 인터넷의 시뮬라크라에 새로운 시청각적 활력을 불어넣는다. (비록 저작권을 훼손한 원전들이나 성-폭력을 소재로 한 상업적 영상물들이 함께 유통되고 있기는 하나) 특히 가상공간에서의 집단창작을 통한 예술의 생산과 소비의 공공성 확대는 유투브를 통해 실현의 가능성을 엿볼 수 있다. 유투브는 동영상을 매개로 하는 까닭으로 기본적으로 -대부분 기초적인- 메타언어로 구성된다. 이렇게 생산된 텍스트는 전달하고자 하는 바가 비교적 명확하지 않기 때문에 메시지 중심의 기존의 소통체계에서는 피드백의 가능성 즉, 댓글 혹은 패러디의 가능성이 매우 낮은 소통체계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짧고 단순한 비결정적 구조를 취한 까닭으로 담론의 장에서 무한한 소통의 가능성을 가지기도 한다. 창작하거나 답을 하기 위한, 혹은 패러디를 위한 내용을 개념화 하여 하나의 영리한 스타일로 인코딩하는 것을 택하는 것이다.
아래의 사진들은 유투브에 링크된 동영상들을 캡쳐한 것으로 daftpunk의 곡과 뮤직비디오의 구조를 다른 시각적인 기호와 제스쳐들로 패러디한 것들이다.
이러한 생산성은 하위문화의 결합이나 집단창작의 확대로 발산하는 것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주류예술에도 영향을 끼치고 있다. 대표적으로 1960년대 이후 활발하게 진행중인 미디어 아트와 가상공간 혹은 인터랙티브의 관계는 현 시대 –아트의 대세를 이루고, 현태준(1966년생)의 국산품展은 만화가이자 장남감 수집가이기도 한 그의 오타쿠적 기질이 다분한 작업이다(아래 이미지들). 최신 영화 ‘클로버 필드’의 울렁거리는 핸드헬드홈비디오연출은 (제작비 수천만달러라는 점만 뺀다면) 유투브 그 자체 아닌가.
다만 쌍방향성을 특징으로 하는 새로운 소통구조의 문화가 예술 텍스트로서의 미학적 성과와 질을 담보할 수 있나, 하는 질문에는 아직 단언할 수 없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으로 첫 세미나의 발제문을 얼렁뚱땅 끝맺어본다.
오타쿠お宅, オタク의 유투브YouTube
-파괴되는 예술창작의 경계. 진화하는 비평집단, 2인칭과 many to many의 예술.
불가에서 중생이 있듯이 폐인 세계에는 햏자가 있다. 햏자들은 열반에
다다름을 득햏이라 하는데, 이 득햏을 하기 위해 항시 수련하고 있다.
득햏 수련에는 3대 기본 수련과정이 있으니, 그것은 주침야활(晝寢夜活),
삼시면식(三時麵食), 햏언수행이다 (햏자복음 제3장).
1. 오타쿠와 디씨폐인
-예술의 개인화된 소비와 사이버공간에 대한 강박적 생활의 문화적 소비
우리는 디씨인싸이드닷컴www.dcinside.com의 ‘햏자’들을 기억한다. 이들은 디지털카메라 리뷰사이트에서 시작되어 발전된 웹사이트의 매우 세분화된 카테고리의 게시판에서 온갖 종류의 시시콜콜한 주제를 두고 갑론을박을 펼치며 서로 반응의 민첩함을 다투며 긴장감을 즐기는 무리들이다. 스스로를 폐인이라 칭하며 많은 시간을 가상공간인 인터넷에 할애한 나머지 이들이 만들어낸 3대원칙은 지극히 게으르게 보내고 있는 현실세계의 단면을 잘 보여준다 이들 ‘햏자’들은 ‘아햏햏’과 ‘님하’와 같은 자신들만의 자극적인 조어를 서로의 기호로서 교류하며 사회적 약속체계로서 언어가 갖는 기본틀을 해체하여 사용하는데, 이들의 언어는 ‘~하오’, ‘압박하다(반응을 나타내다)’, ‘방법하다(혼내주다)’와 같이 자신을 2인칭으로 이해한 표현들을 주로 사용한다. 이러한 인칭관계는 가상공간의 익명사회 속에서의 공동체적 동일성과 친근함이 비껴 표현된 것으로, 개인들은 다수소통many to many communication의 관계 사이에 id와 비칭으로 적절히 자리잡을 수 있다.
이들의 생활은 90년대 일본에서 디지털매니아로 성장하여 대두되기 시작한 ‘오타쿠’문화의 연장선 상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일본의 오타쿠라고 하면 표면적으로는 방에는 만화책과 캐릭터 피겨가 가득하고 엄청난 용량의 컴퓨터 하드에는 좋아하는 애니와 그라비아아이돌의 디지털영상콘텐츠가 가득한 -촌스러운 옷차림과 사회부적응 성향의- 2,30대의 남성이 연상된다. 이들은 비교적 짧은 역사를 가진 대중매체의 하위문화에 집착하며, 그 정보를 수집하고 체계화하며 만족을 얻는다. 테크노와 애니메이션으로 집에 갇혀 자신만의 세계를 건설하던 디지털매니아들은 네트워크를 만났고, 그 네트워크 공간에서 자신만의 세계를 연출하기 시작했다. 사회와는 뭔가 다른 행동, 이전 사람들과는 뭔가 다른 양식과 취향을 통해 그들은 동인집단(동호회)을 만들었고 그들만의 규범적 표상을 통해 사회 내적 존재로서 세계에 자신을 링크시킨 것이다. (‘오타쿠’를 지칭하는 일본어는 원래 상대를 높여 부르는 용어로 한국 폐인들의 ‘님하’와 매우 비슷한 어원을 가지고 있다는 점도 재미있다.)
2. 모에현상과 패러디
-예술의 생산 소비 유통구조의 중첩과 대중화.
초기, 혹은 대부분의 동인활동을 통한 오타쿠 개인들 사이의 교류와 패러디의 시도는 원전의 기본 구조를 변형하지 못하고 외부에서 주어진 완결된 서사의 세계 머물렀다. 이들은 서사를 열어 현실로 확장시키지 못했고 오히려 광적으로 서사의 중심에 몰입하며 현실로부터 도피하였다. 문화소비는 범주와 장르에 한정되었으며 고작 기념판의 출시 정도로 되새김질 되거나 튀어나온 뱃살에 ‘신지’의 스판수트를 끼워 입으며 체화하는 것에 그쳤다.
오타쿠 문화의 양적 성장은 필연적으로 그들이 향유하는 문화의 유통구조에 영향을 준다. 동인지에 의한 패러디는 미디어는 주로 원전을 따르지만 서사구조가 변형된다. 이에 생긴 추상 개념으로 ‘모에(萌え)’가 있다. 이는 좋아하는 미소녀 캐릭터나 전동차와 같은 것에 가슴에 솟는 ‘훈훈함’정도로 이해할 수 있는 개념인데, 주로 남성향이 강한 분야에서 모에현상에 의한 팬서비스 차원의 문화생산구조가 발달했다. 만화연구가 김낙호는 이를 ‘원형적인 요소들의 파편을 긁어 모아서, 그 속에서 자신만의 이상향을 조합해 맞춰내는 방법’이라고 규정하는데 패러디의 목적이 개인적인 까닭으로 이를 통해 직접적인 문화의 예술적 확장을 크게 기대하기는 어렵다. 이정우의 경우 원전에의 충성과 편집증적 수집을 통해 자신만의 이상향을 구축하고 그 안에서 추상적인 자기만족의 쾌락을 획득하는 일이 오늘의 젊은이들이 사회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다는 냉혹한 사실을 역설한다는 것이라 말하기도 한다.
3. 웹진, 블로그, 미디어아트, 하이퍼-내러티브 그리고 유투브
-이데올로기가 아닌 취향을 통한, 메시지가 아닌 미디어를 통한 스타일의 인코딩
일본 오타쿠(표면적이고 상징적으로 단순히 지칭)의 자기만족적 패러디는, 한국의 오타쿠인 디씨폐인들에 와서는 온라인 정치행위와 광장에 대한 지배 등 선동적이고 폭력적인 양상을 보이다가, 블로그의 시대가 본격적으로 도래한 이 후로는 문화예술적 취향을 통해 더욱 다층화된다. 꾸준히 등장하는 예술에서의 미디어아트 분야의 양적 질적 성장과 함께 가상공간의 디지털문화 또한 풍요롭고 복잡하고 예민한 현실의 감성에 비교적 가깝게 다가서게 된 것이다. 링크된 웹진과 블로그들은 사이버스페이스에서의 개인들에게 지정학적 좌표를 제공하여 대중의 접근을 용이하게 만들었다. 사람들은 더욱 쉽게 더 많은 것들과 교류하게 되며, 그럴수록 개인의 취향으로 무장하고자 열망하게 되었다. 선형적인 시간 위의 개인은 가상공간의 hyper-narrative를 통해 자아의 분화된 면모들을 하나의 문화체계로 재편성한다. “주체의 드라마는 객체와 주체의 이미지 난관에 봉착하면서 끝났으며, 우리는 배우나 극작가가 아니라 다층적 네트워크의 단말기에 불과하다”는 보드리야르의 언급은 전자정보시대의 다원화된 정체성multi-identity을 특징으로 하는 새로운 주체탄생을 예고하고 있다. 이러한 열린 서사는 디지털 문화와 예술을 이해하는 핵심이 아닐까, 개개인의 실명은 무의미에 수렴한다.
우리는 여기서 미디어와 예술과의 관계를 논하지 않을 수 없다. 예술(혹은 문화)과 매체 또는 예술과 테크놀로지는 미학과 예술사가 제기하는 본질적인 문제들과 닿는다. 디지털과 시청각예술의 만남은 예술 텍스트의 생산, 소비, 유통의 전과정을 비물질적인 시스템으로 재편하였다. 게다가 그 변화는 날이 갈수록 고도로 복합적인 스타일을 손쉽게 하고 있다. 웹 상의 게시판에서 함께 감상하고 리뷰를 작성하고 댓글을 달던 ‘오타쿠폐인’들은, 이제 동영상 서비스, 게시판에서 1:1채팅, 메신저 서비스와 wi-fi 무선 랩탑, 휴대폰을 기본으로 PDA와 PMP기기 등 다양한 서비스를 누릴 수 있게 되었다. 언제 어디서나 깁슨이 얘기한 바와 같은 ‘수천만이 합의하는 공감각적 환각’속에 들어갈 수 있다. 또한 욕망의 다채로운 표출이 가능해졌으며 의사소통의 선택가능항이 확대되었다. 더구나 이 서비스들 대부분은 일방적인 예술가와 생산자에 의해 소비되는 방식이 아닌, 함께 만들거나(prosumer), 혹은 스스로 만드는(DIY)방식에 의해 이루어진다.
“Everyone’s a star.com”
이제 우리는 값싼 테크놀로지 덕으로 스스로 영화나 앨범, 또는 TV쇼를 만들 수 있다. 아
무리 가치 없다고 판단되는 아이디어라 할지라도, 컴퓨터는 그것을 아주 전문적으로 만들
수 있도록 도와준다. 컴퓨터 덕분에 우리는 우리 스스로 뭔가를 만들 수 있는 가장 간단한
테크놀로지를 가질 수 있게 되었다.
-Romesh Ratner & Joel Stein, Time, June 5, 2000
유투브닷컴YouTube.com을 필두로 한 동영상의 대중화는 옛날 MTV가 현대의 거실에 그러하였듯 인터넷의 시뮬라크라에 새로운 시청각적 활력을 불어넣는다. (비록 저작권을 훼손한 원전들이나 성-폭력을 소재로 한 상업적 영상물들이 함께 유통되고 있기는 하나) 특히 가상공간에서의 집단창작을 통한 예술의 생산과 소비의 공공성 확대는 유투브를 통해 실현의 가능성을 엿볼 수 있다. 유투브는 동영상을 매개로 하는 까닭으로 기본적으로 -대부분 기초적인- 메타언어로 구성된다. 이렇게 생산된 텍스트는 전달하고자 하는 바가 비교적 명확하지 않기 때문에 메시지 중심의 기존의 소통체계에서는 피드백의 가능성 즉, 댓글 혹은 패러디의 가능성이 매우 낮은 소통체계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짧고 단순한 비결정적 구조를 취한 까닭으로 담론의 장에서 무한한 소통의 가능성을 가지기도 한다. 창작하거나 답을 하기 위한, 혹은 패러디를 위한 내용을 개념화 하여 하나의 영리한 스타일로 인코딩하는 것을 택하는 것이다.
아래의 사진들은 유투브에 링크된 동영상들을 캡쳐한 것으로 daftpunk의 곡과 뮤직비디오의 구조를 다른 시각적인 기호와 제스쳐들로 패러디한 것들이다.
이러한 생산성은 하위문화의 결합이나 집단창작의 확대로 발산하는 것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주류예술에도 영향을 끼치고 있다. 대표적으로 1960년대 이후 활발하게 진행중인 미디어 아트와 가상공간 혹은 인터랙티브의 관계는 현 시대 –아트의 대세를 이루고, 현태준(1966년생)의 국산품展은 만화가이자 장남감 수집가이기도 한 그의 오타쿠적 기질이 다분한 작업이다(아래 이미지들). 최신 영화 ‘클로버 필드’의 울렁거리는 핸드헬드홈비디오연출은 (제작비 수천만달러라는 점만 뺀다면) 유투브 그 자체 아닌가.
다만 쌍방향성을 특징으로 하는 새로운 소통구조의 문화가 예술 텍스트로서의 미학적 성과와 질을 담보할 수 있나, 하는 질문에는 아직 단언할 수 없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으로 첫 세미나의 발제문을 얼렁뚱땅 끝맺어본다.
댓글 2개:
포스팅이 늦어져서
세미나 한지 두달이 다되어 올려용.
이미지올리다가 버벅거립니다..ㄷㄷ
사진을 무려 한장한장씩 올리는
멋진 구글!
이미지,동영상 추가랑
레이블링, 제목편집 마저 할테니
임양이 세번째 올립시다!
한글폰트도 굴림밖에 없는건가!!
아, 이건 좀 좌절인데요?
구글의 한글폰트 지원은 거의 최악이라고 할 수 있죠.ㅠ 일단 제목들을 올리고 수정하는 식으로 윳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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